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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제의 음악
백제의 음악은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6세기 중엽 이전에 이미 정기적으로 악사를 일본에 파견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일본에 전해진 백제 음악에는 군후, 막목, 횡적 등의 악기와 춤이 있는데,
이들 악기로 보아 백제의 음악은 고구려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일본의 역사책인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사람 미마지(未摩之)가 612년 일본에 귀화했는데,
그는 오(吳)나라에서 배운 탈춤의 일종인 기악무(伎樂舞)를 일본에 전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에는 당시의 가면이 보관되어 있다.
그가 전한 기악무는 우리 나라의 <양주산대놀이>와 비슷한 내용과 구성을 지닌 것이었다.
1) <양주 별산대놀이>는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서울 중심의 경기지방에서 연희되어온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한 분파로서,
녹번, 아현 등지의 본산대(本山臺)와 같다.
약 200년 전부터 해마다 사월초파일과 단오에 한양의 ‘사직골 딱딱이패’를 초청하여 놀았으나
그들이 지방공연관계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많자
양주골 사람들이 탈을 만들고 연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본산대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이 놀이가 경기지방의 대표적 탈놀이로 전승되었고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사월 초파일과 단오, 추석에 주로 연희되고,
크고 작은 명절 외에도 가뭄 때의 기우제 행사로 연희되기도 한다.
다음은 양주별산대의 옴중과 상좌 탈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같이 탈을 쓰고 추는 탈춤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탈춤은 선사시대 조개껍질에 눈과 입을 뚫은 탈이 처음으로 보여지는데
그의 기원은
백제사람 미마지가 일본에 전했다는 기악설 뿐 아니라,
천체 기원설, 처용가무설 (신라 헌강왕때의 처용무에서 비롯),
풍물굿에 등장하는 잡색놀이설, 산대도감설(권력자의 안배로 시도) 등이 있다.
이를 전국의 분포도로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 산대도감극 계통
양주별산대놀이: 경기 양주,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1964)
은율탈춤: 황해도 은율, 제61호(1978)
송파산대놀이:서울 송파, 제49호
봉산탈춤: 황해도 봉산, 제17호(1967)
강령탈춤: 황해도 강령, 제34호
(2) 오광대놀이계통(오행설에서 유래)
고성오광대: 경남 고성, 제7호(1964)
김해오광대: 경남 김해, 음력 정월 대보름에 연희
통영오광대: 경남 충무시, 제6호
동래야류: 부산 ,제18호 (1967)
수영야류: 부산, 제43 호
(3) 서낭제,민속극계통
하회별신굿(제69호), 북청사자놀음, 강릉관노가면극
한편 중국의 역사책인 《수서》 동이전에 의하면,
백제 음악에는 고(鼓), 각(角), 공후, 쟁, 우(?), 지(?), 적(笛) 등의 악기가 사용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들 악기는 중국 남조의 청악(淸樂)과 비슷하다.
이는 백제가 중국 남조와 교류하면서 그 지역의 음악문화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의 음악은 고구려 음악과는 달리 7부기, 9부기, 10부기 등에 포함되지 못하고,
다만 잡기(雜伎)로만 분류되었다.
2) 《고려사》 악지의 백제 음악으로
<선운산(禪雲山)>, <무등산(無等山)>, <정읍(井邑)>, <방등산(方等山)>, <지리산(智異山)> 등의 악곡명이
소개되었는데, 이들 악곡은 향토음악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중 정읍사는 고려사 권71,지 권제25,악2(樂 二)에 전한다.
한 행상인이 행상하러 나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의 아내가 망부석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올 길을 바라보며
혹시 밤길을 가다가 해를 입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지어 부른 노래이다.
정읍사는 <악학궤범> 권5, 시용향악정재도의조에 가사와 연행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정읍사〉를 부르는 가운데 기생 8명이 나와 연행절차에 맞춰 춤을 추고 북을 치는데
마지막에 악사가 박을 치면 북을 멈추고 물러 나가고 음악이 그친다.
3) 백제시대의 유물로 계유명석상의 주악상과 금동향로가 있다.
계유명전씨 아미타불삼존석상은 높이 43㎝로 국보 제106호이다.
충북 청주시 국립청주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아미타불삼존상과 주악상은 계유년(673)에 전씨 일가의 발원에 의하여 조성되었다고 한다.
충남연기군 비암사에서 출토되었고, 백제청상악보존회에서
백제 악기와 연주, 제례의식 등을 복원하였다. (금강일보 2014.8.15.기사)
1993년에 새롭게 발굴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金銅龍鳳蓬萊山香爐)에는
다섯 사람의 악인이 각기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주악상에는 장적(長笛)과 소(簫), 북, 금(琴), 완함을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형식은 중국향로를 따랐으나 조형성이나 회화적인 구도는 중국을 뛰어넘는
예술적 감각과 독창성을 발휘한
대표적인 백제 미술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뚜껑의 꼭지 위에 있는 봉황은 꽁지를 쳐들고 날개를 활짝 펴고 있으며,
그 밑으로는 5인의 악사(樂士)가 있고,
다시 아래로는 74개의 산이 중첩되었다.
몸통에는 우아하고 정교한 연꽃무늬가 새겨 있으며,
한 마리의 용이 입을 그릇바닥 중심에 붙이고 몸을 틀어 내려서 받침을 이룬다.
백제의 음악을 정리하자면,
백제의 악기에는
군후(현악기), 막목(관악기), 횡적, 금, 완함, 종적, 소, 요고, 각, 공후, 쟁, 우, 지, 적,
도피필률, 비파, 생황, 현악기(호로사, 청상악보존회)가 있으며,
음악에는 기악무(탈춤), 정읍, 선운산, 방등산, 무등산, 지리산이 있고,
유물로는 계유명석상의 주악상과 금동향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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