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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 음성서(音聲署)

1) 신라의 국가음악기관

2) 신라 24대 진흥왕 5년(555년)에 음성서의 관직을 두었다는 기록

3) 진흥왕5년(555년)예부(禮部)음성서(音聲署): 장(長)2명+대사(大舍)2명+사(史)4명

4) 신문왕7년(687년) 음성서: 경(卿)2명+사(史)4명

5) 경덕왕(742-765) 대악감: 경→ 사악(司樂), 주부→대사, 사(史)4명(경과 주부가 사악대사로 개정)

6) 혜공왕(765-780) 음성서: 처음-장2명, 개정-경2명, 대사2명, 사4명
7) 음성서의 명칭: 경덕왕 대악감→ 혜공왕 다시 음성서

8)  음성서의 관원: 장(長)2명․대사(大舍) 2명․사(史)4명으로 구성

9)  이란 관직명: 687년(신문왕7년)(卿)으로 개칭→ 경덕왕때 사악→ 혜공왕 때 또다시

10)  대사의 명칭: 경덕왕 때 주부(主簿)로 개칭 → 대사로 복원

11)  이나 : 음성서의 우두머리

12)  음성서의 대사라는 관직: 신라의 골품사회에서 6두품~ 4두품 사이에 속한

  귀족출신의 사람들이 차지할 수 있었음, 따라서 음성서 관리들의 사회적 지위는 일반 백성보다 높았다
13)  음성서의 관리들: 음악연주활동을 행정적으로 관장

14)  음성서의 관리 아래 있었던 악공 등: 악기연주자․가수․무용가로 구분, 그들 모두를 이라고 부름

15)  금척: 가야고를 연주하는 악공

16)  가척: 노래를 부른 악공

17)  복식: 연주 때 춤추는 악공은 푸른 옷을,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은 붉은 옷을,

  노래를 부른 악공은 채색된 옷을 입고서 수놓은 부채를 들었음, 모두가 금실로 꾸민 띠를 띠었음

18)  음성서의 악공들은 연주곡목 또는 연주기능에 따라서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것으로 추정

   - 대금무 연주 때 금척이 입었던 붉은 옷을 무척이 입은 사실

19)  음성서 관리와 악공들은 궁중의 공식 행사 때마다 음악과 무용을 제공했음이 명백

 

 三國史記  卷第三十二 雜志 第一 음악[樂]
신라 악공의 별칭
신라 때에는 악공(樂工) 을 모두 척(尺)이라 하였다.
註 악공: 신라시대 음성서에서 노래, 춤, 악기를 연주했던 사람. 일명 공(工), 공인(工人), 악인(樂人), 악생(樂生). 
註 척: 우리 나라에서 예전부터 하급전업자(下級專業者)를 일컫는 용어. 
신라시대에는 여기의 가척(笳尺), 금척(琴尺), 무척(舞尺)사용
가척(歌尺) 외에도 직관지(職官志)의 구척(鉤尺), 궁척(弓尺), 목척(木尺) 등이 있고, 
고려 및 조선시대의 수척(水尺), 화척(禾尺), 양수척(楊水尺), 진척(津尺), 도척(刀尺), 
묵척(墨尺), 잡척(雜尺) 등의 명칭이 있다. 고대의 척(尺)은 옛 음이 ‘치’인 것으로 보아
국어에 직업의 호칭인 ‘치’(벼슬아치, 장사아치, 갖바치 등등)에
해당한 것이 아닌가 추측( 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 509쪽)하고 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 고려

958년(광종): 5월에 처음으로 과거제를 둠→ 1004(목종) 3월에 과거법 개정

→ 1045(정종) 4월에 오역·불충·불효·악공과 같은 자손은 과거 보는 것을 금지

→ 1048(문종) 10월에는 서민이라도 악공 잡류에 매이지 않은 자는 공원과(貢員)에 응시 가능

→1053(문종) 10월에는 악공으로서 3~4인의 아들이 있는 자는 그 중 1인이 그 업을 계승하도록 함

→1123(예종)6월에는 악공 자손은 국가의 공훈이 있더라도 물품으로 포상하고 벼슬 주는 것은 금함

악공의 자손은 배우고 싶어도 길이 없고, 벼슬을 지낼 수 없으니 천인으로 전락, 사회적 냉대를 받음

 

 1) 대악서

고려의 왕립음악기관 중 제일 먼저 설립

늦어도 10세기말에 설립

고려 목종(997~1009)때 영(令)이란 관직을 두어 음악행정을 담당- 문종(1076)때 영1(종7품), 승2(종8품)

  - 충렬왕(1308)때 영2(정7품), 장2(종7품), 승2, 사2(종8품), 직장2인(종9품)

왕이 전용으로 쓸 수 있는 많은 수의 여기와 악공을 거느린 국립음악기관

고려 말 전악서로 개칭: 1308(충렬왕) 전악서→1356(공민왕5) 대악서→ 공민왕11 전악서→공민왕18 대악서 →공민왕21 전악서

 

2) 관현방

문종(1076)때 설치, 실제 음악과 무용만을 가르칠 악사 및 연주담당자인

  악공과 여기의 활동을 관장했던 국립음악기관

1352년 관현방이 폐지되고 아악서 설립

1389(공양왕): 십학을 둠- 예학, 악학, 병학, 율학, 자학, 의학, 풍수음양학, 이학 등

 

3)교방

고려의 속악(향악, 당악)을 주로 담당하는 왕실기구로서 여악의 교습을 위해 설립

 

4) 고려음악기관의 변천

목종(998~1009) 대악서(영:성율의 교열을 맡음)→ 문종30(1076) 대악서, 관현방

→ 인종1(1123) 대악사(여기260인, 왕이 상용함), 관현방(여기170인), 경시사(여기300여인)

→ 고종32(1245) 팔방상(공인1300여인) → 충렬왕34(1308) 전악서

→ 공민왕5(1356) 대악서~전악서

→ 공양왕3(1391)전악서, 아악서(종묘악가를 익힘), 관현방(공양왕3년에 파함)

3. 조선의 음악기관

1) 악학: 악학을 포함한 십학(유∙무∙이∙역∙음양풍수∙의∙자∙율∙산∙악)은 예조에 소속,

  봉상시 제향악의 문무무와 가(歌)를 담당, 아악서 제향악의 헌가와 등가악 연주,

  전악서의 당악과 아악 취재담당

2) 봉상시: 제향악 중 재랑(가와 문무)과 무무 전담

3) 아악서: 제향악의 헌가와 등가악 연주

4) 전악서: 속악 즉 조회, 행행대가의 전부고취와 문소전, 휘덕전의 속악제향,

  연향 중 헌가 또는 전정악 등의 향당교주 담당

5) 관습도감: 연향 때 전상에서 여기와 악공의 향악과 당악의 연주, 교방여기의 습악 담당

6) 장악서: 봉상시+아악서+전악서; 음악활동의 실제적인 교육과 습악 관장)와

  악학도감(악학+관습도감; 행정적 사무)으로 양분(세조 3년,1457) 

7) 장악서(악생:좌방의 아악연주만 담당, 양인출신/악공:아악 중 기악연주만/재랑과 무공:아악의 노래와 춤 연주, 내연의 음악연주 및 정재공연활동)로 일원화(세조12년,1466)

8) 장악원(성종1469~1494)

9) 교방사(1897)

10) 장악과 및 아악대(1907)

11) 이왕직아악부(1910~1945)

12) 구왕궁아악부(1945~1950)

13) 국립국악원(1951~ )

※ 장악원관직- 정직(양반관료로 구성), 잡직(중인 악생 악공출신의 행정관료로 구성),

  음악연주담당(악생, 악공, 관현맹인)

● 정직- 제조(인물:박연), 정, 첨정, 주부, 직장

● 잡직(체아직)-전악, 부전악, 전율, 부전율, 전음, 부전음, 전성, 부전성

● 좌방의 아악인- 악사2명, 악생297명, 보수 100명 (총399명)

● 우방의 속악인- 악사2명, 악공518명, 보수52명(총572명)

4. 국립국악원 연혁

1950. 01. 국립국악원 직제 공포(대통령령 제 271호), 문교부장관 감독하에 국립국악원을 둠

1951. 04. 국립국악원 초대 원장 이주환 발령

1951. 04. 국립국악원 개원

1954. 10. 국립국악원 부설 교육기관 국악사양성소 설치, 이주환 국악원장이 초대소장 겸직

1955. 04. 국악사양성소 개소, 1기 30명선발입소

1961. 03. 국악사양성소 제 1기(17명) 졸업

1961.10.02. 문교부에서 공보부로 소속 이관

1962.01.05. 악기진열실 및 연주실 증축 신장 개관

1967.12.09. 종로구 운니동에서 장충동 청사(현 국립극장별관)로 이전

1968.07.24. 공보부에서 문화공보부로 소속 이관

1972. 07. 국악사양성소가 국악고등학교로 승격(문교부로 이관)

1973. 08. 장충동 청사 (현 국립중앙극장 별관)에서 극장으로 이전

1987. 11. 관리과, 장악과, 국악진흥과,국악연구실을 둠

1987. 12. 장충동 국립중앙극장- 서초동 청사로 이전

1988. 02. 서초동 청사 개관<소극장(현 우면당), 사무연습동>

1990. 01. 문화공보부에서 문화부로 소속 이관

1991. 12. 국립국악원 소속 국립민속국악원 설립

1992. 03. 남원 노암동에 국립민속국악원 개원

1993. 03. 문화부에서 문화체육부로 소속 이관

1995. 02. 국악박물관 개관

1996. 02. 전속국악연주단의 조직을 정악단, 민속단, 무용단으로함

1996. 10. 예악당 개관(서초동 현청사 전관개관)

1997. 05. 국립민속국악원 어현동 신축청사 개관

2001. 03. 국악FM방송국 개국 (FM99.1 MHz)

2001. 04. 국립국악원 개원 50주년 기념식

2004. 04. 국악연주단 창작악단 창단

2004. 07. 국립남도국악원 개원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2006. 03.26. 악기연구소개관

2008. 10. 국립부산국악원 개원 (부산진구 연지동)

2013년 04월 26일 연희풍류극장(연희마당, 풍류사랑방) 개관

2017년 02월 15일 우면당 재개관

 2019년 08월 20일 국악박물관 상설전시실 재개관

2020년 08월 20일 국악박물관 공간이음 개관

2021년 03월 17일 공연연습장 예인마루 개관

 

5. 의궤(儀軌)

 

1) 조선 왕실에서 국가의 주요 행사가 있을 때 훗날 참고하기 위해 남기는 기록문서, 의궤반환

 

2) 조선 왕실에서 주관하는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임시 기구인 도감(都監)을 두어 이를 주관하게 했는데,

 행사를 마치면 도감을 해체하고 의궤청(儀軌廳)을 설치하여 의궤의 편찬을 맡아보게 하였다

3) 20076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20151231일 대한민국의 보물 조선왕조의궤로 지정 예고되고,  201653일 지정되었다

 

 

4) 규장각에는 1567, 2897책에 달하는 국내에서 가장 방대 한 수량의 의궤 소장,

   유일본의궤는 117

5) 소장 의궤의 편찬 시기도 17세기부터 19세기 까지 비교적 고르게 분포 .  원행을묘정리의궤

 

 

 

 

참고문헌

이소영, 근대 국가음악기관의 변천, 이대석사논문, 1998

강문식, 규장각 소장 의궤(儀軌)의 현황과 특징, 규장각 Vol.37, 2010 

고승준, 조선시대 악기의 개념과 수급방식 변천 연구 - 악서와 의궤를 중심으로 , 서울대 석사논문, 2019.

KBS 역사저널-의궤 8일간의 축제

직지의 꿈 https://youtu.be/HF2xO7MU088

박병선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