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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연예술의 변천

1) 상고시대: 국중대회(제천의식: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 무천, 마한 5월제 10월제)/ 삼국지 위지 동이전

2) 통일신라: 당나라 당악의 전래

3) 고려시대: 팔관회, 연등회, 궁중연향, 불교의 야단법석(궁궐이나 절 마당에서 행하는 국중대회)

4)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를 중심으로 정비, 당악정재와 향악정재로 대체

2. 궁중 공연 예술의 연행자

1) 여악: 천인, 특정기관에 소속되어 신역으로 가 무 악을 공연하는 여자 음악인(여기, 의녀와 침선비)

  - 장악원여기는 외방여기중 기예가 뛰어나 뽑힘

  - 의녀는 내의원이나 혜민서에 소속되어 부녀자들의 치료를 담당하던 여자

  - 침선비는 상의원에 소속되어 바느질을 담당하던 여자

2) 남악: 궁중에서 가 무 악을 연행하던 남자음악인(장악원 악공, 관현맹인, 무동)

  -  장악원악공은 취재를 통해 선발하고 세습됨

 ※ 1744(영조) 여악이 내연연주

   → 1795(정조) 내진찬에 악공이 연주

   → 1809 내연에서 악공이 연주

   → 1829 내연과 외연에서 악공이 연주

- 관현맹인은 관현맹, 고악이라하며 여악이 담당하기 힘든 관악기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둔 제도, 
   장악원에 소속되어 향악과 당악을 익혀 내연이 있을 시 연주담당
- 무동은 여악대신 정재를 추던 어린 소년

3) 악생은 양인출신으로 좌방에 소속되어 제례의식의 아악담당

4) 악공은 천인출신으로 우방 소속되어 연향때 향악과 당악 연주

 

3. 내연의 정재차비

1) 인조반정(1623)이후 악가무를 전업으로 하는 경기(京妓)폐지

영조조(1724-1776) 내연의 정재는 외방여령이 담당

정조조(1776-1800) 의녀와 침선비 +외방여령

고종조(1863-1907) 의녀와 침선비의 비중이 외방여령보다 높아짐,

   작은규모의 내연은 의녀와 침선비로 이루어진 京妓(앞의 의미와 달라짐)만이 담당,

  외방여령을 부르는데 따르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4. 일무

1) 일무(문무와 무무)는 예악의 결정체인 제사에서 사용된 춤인 제례무에서 유래, 덕을 높이는 문무와 공을 치하하는 무무로 구분

2) 문무는 읍례의 춤사위, 무무는 ‘공격과 방어’의 춤사위

3) 8일무 천자, 6일무 제후, 4일무 대부, 2일무 사()

 

 

5. 속악을 쓰는 제례악

1) 원묘·혼전·둑소제향: 조선조 처음부터 속악사용

2) 종묘: 처음 아악→ 세조10(1464)이후 속악연주
3) 원구: 세조 10년 이후 속악연주
4) 관왕묘·경모궁:  정조조부터 음악이 쓰였는데 속악 연주

5) 보태평·정대업: 임종궁평조 남려궁 계면조로 연향에 사용

  → 세조10년 이후 종묘·원구에 연주: 청황종궁 평조와 계면조, 
  협종궁 평조와 계면조로 바뀜, 인귀와 천신을 맞이하는 악조이므로
  → 선조조(1567-1608)제향에만 연주 정착, 종묘·영녕전·혼전에 연주
  → 정조조에 경모궁·관왕묘제례악으로 채택

초기에는 시가가 다른 속악식 리듬 → 11박의 아악식 리듬으로 바뀜

6. 가례와 빈례의 정재

1) 舞譜에 따라 당악정재와  향악정재로 구분

2) 아악(길례, 송의 대성아악), 당악(중국에서 들어온 연악), 향악(고대부터 전승된 궁정음악)
3) 『고려사 악지』(문종,1450?): 정재라는 용어는 없고, 당악과 향악, 악사의 수 등이 기록
4) 『태조실록』: 정재라는 용어 사용
5) 『악학궤범』(성종,1493): 궁중에서 연행되는 춤을 정재라고 함

7. 향악정재

1) 한국 고유의 춤으로 조선 세종 이후 체계화

2) 무원(舞員)들은 죽간자의 인도 없이  무대에 등장함

  - 면복흥퇴(꿇어앉아 엎드려 절하고 일어나서 퇴장함)의 형식

3) 한글로 된 창사를 부름

※ 조선 말기 : 죽간자의 유무에 관계없이 무원의 동작이 같아짐,

  한문 창사가 보편화 됨, 전대(前代)까지의 향악당악정재의 구별이 없어짐

 

4) 무고 (舞鼓)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조선 말기까지 전래

「고려사」악지에는 무원 2, 정읍사창사, 향악반주  
성종때 무원 8, 북채를 들고 춤, 의상은 청···흑색
순조대 4인 축소, 협무 18인 등장: 매우 화려하게 펼쳐짐
→ 「정재무도홀기」 원무 4,협무 8, 한문으로 된 창사

음악은 삼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이 반주음악으로 사용

5) 아박무 (牙拍舞)

()나라에서 유래
2인이 양손에 아박을 들고 치며 주로 동동의 노래를 부르면서 정읍만기에 맞추어 춤을 춤
조선 순조 때에 동동의 가사를 버리고 칠언 한시로 바뀜
 
6) 무애무(無㝵舞)

신라시대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제된 정재

고려사 악지에 전하나 악학궤범(숭유억불정책)에는 실리지 않고 조선 말기에 재연에 이르며 무애무라 불림

불교의 포교적 내용을 담았던 원래의 모습이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점차 오락화되고

왕가의 번영을 송축하는 내용으로 바뀜

 

7)  봉래의(鳳來儀)

조선 세종대왕이 선조의 개국창업의 공덕을 칭송하여 지은 춤
전인자(전주곡)- 진구호(죽간자가 부르는 구호)-여민락-치화평-취풍형-후인자(후주곡)-퇴구호(죽간자의 구호)

<용비어천가>를 창사로 가곡의 농·편수대엽 가락에 얹어 부름

죽간자 2, 무원 8

음악 여민락령(한문: 해동장-근심장-원원장-석주장..)-치화평(국한문:해동장-불휘장..)-취풍형(해동장…)

8)  학무(鶴舞)

조선시대에 만들어 짐
무원 2인이 청색, 황색(혹은 백색)의 학 모양에 탈을 쓰고 학의 행동과 동작을 표현
중요무형문화재 제 40호로 지정되어 보존·전승
창사는 없음

9) 처용무(處容舞)

이 춤은 신라 헌강왕때 발생된 춤
처음에는 1이 가면을 쓰고 춤→ 고려때 국가적 행사인 팔관회에서 산대 잡희와도 연희
→ 조선 태종 때에는 2이 추었을 것으로 추측 → 세종·세조 대에 걸쳐 더욱 발전
성종 오방처용무로 완성되어 궁중나례에서 학무·연화대무와 합설해 춤 → 궁중 정재로서 전승
 

10) 춘앵전 (春鶯囀

순조(1828)효명세자가 모친 순원숙황후 의 보령40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것

이른 봄날 아침에 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자태를 무용화 한 것
꾀꼬리를 상징해 노란 색의 앵삼을 입고, 화관을 쓰고, 오색 한삼을 양손에 끼고 꽃돗자리 위에서 추는 독무
반주음악 평조영산회상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염불도드리, 타령 등
 

8. 당악정재

당악정재는 고려 문종(1073) 때 송나라로부터 도입된 춤
춤의 시작과 끝을 죽간자(竹竿子)가 인도, 한문으로 된 창사(唱詞)를 부름
구호와 치어가 있음

1) 헌선도(獻仙桃)

정월 대보름날 밤에 가회(嘉會)를 열어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함

내용: 왕모(王母)가 선계(仙界)에서 내려와 선도(仙桃)를 드리는 줄거리
『고려사악지- 왕모 1협무 1인 구성, 주위에 의장대가 있음,
음악은 당악만을 사용, 28박 구성(춤사위변화,음악의 시종)
잡희에 가까웠으나 조선 말기까지 전승
조선 성종 때에는 향악을 연주할 악공을 취재할 때 시험 종목으로 이용되기도 함
 
2) 수연장(壽延長): 23, 중강령을 연주
「고려사」 악지 당악조에 연희순서가 기록되어 있어서 춤의 양상을 용이하게 짐작할 수 있음
중국에서의 기원과 고려에 유입된 사실이 분명치 않음.
 다만 순조(1829)때 「진찬의궤」 주기(註記)에 여러 설이 지적되어 있음
조선 성종대 「악학궤범」 시용당악정재도에도 기록 - 「고려사」 에 비해 원무 16인이 8인으로 축소, 
 의물은 죽간자 2인만 들어 있음(내용이 간결하게 정리)
순조 무자~고종말 신축(1901)년대까지 궁중에서 춤 → 1901년 이후 중단→ 1923년에  재연 , 비원 인정전에서 연희
 

3) 오양선(五羊仙): 28, 오운개서조, 보허자령 연주

기원: 고려사악지  당악조에 홀기의 기록으로 고려시대
다섯 마리의 양을 타고 내려온 신선이 군왕을 송축하는 의미
고려사악지 →악학궤범 당악정재도의(노래가사 수정) →조선후기 순조때 (1829) 진찬의궤에 연희한 사실이 명시
 

 

4) 포구락 (抛毬樂) : 18,절화, 소포구락령/ 삼현도드리, 타령, 자진타령 연주 

고려 문종 27(1073) 교방 여제자 초영(楚英)이 구장기별기와 함께 새로이 전래한 것

죽간자가 나와 마주서고, 여기 1인은 꽃을 들고 포구문 동쪽에 서고, 1인은 붓을 들고 서쪽에 섬

12인을 6()로 나누어 제12인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가 공을 던져 구멍으로 나가게 함

1대가 춤추고 물러서면 제2 3대가 차례로 추는데, 공을 구멍으로 넘기면 상으로 꽃을 주고, 못하면 벌로 얼굴에 먹점을 찍어가며 춤을 춤.

5) 연화대무 (蓮花臺舞): 8, 중선회인자, 헌천수 연주

연화대의 유래: 대곡(大曲) 자지무(枝舞)1부로 본래는 서역의 석국(石國)에서 들어온 것이

송을 거쳐 고려로 전해 진 것(차주환 )

조선 세종대를 거쳐 성종대로 내려 오면서 발전정돈
「악학궤범」 시용당악정재도의에 기록
궁중 나례에서 처용무, 학무와 합설해서 추어지면서 더욱 발전, 무원의 수도 원무가 4인으로 증가

6) 장생보연지무 (=장춘보연지무): 34, 팔천춘추지곡(보허자령), 향당교주

조선조 순조(1829)효명세자의 예제(睿製)로 창작
군왕의 성수무강과 은택을 하례하고, 나라와 백성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의 노래를 부르며 춤
당악정재의 양식인 죽간자와 구호를 도입
다양한 형태와 구성의 변화가 많고 춤사위 다양
춤의 형태가 아홉 번 변하는 진형과 다양한 동작의 변화로 다른 정재가 지니지 못한 우수성을 지님

7)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47,만억천춘지곡(보허자령)

순조의 40, 즉위 30(1829)의 경하연을 베풀기 위해 효명세자가 장생보연지무,
 제수창, 최화무와 함께 당악정재의 양식을 도입하여 창제한 춤
창사의 내용은 부왕인 순조의 덕화의 융성함과 복록의 무강함을 기리는 내용
 

참고문헌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정은혜편저, 『정재연구 1』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 민속원.
악학궤범
국립국악원자료
이명성, 조선후기 궁중공연예술 연구, 영남대박사학위논문, 2011
이망서, 일무에 내재된 사회정치적 의미연구, 성균관대석사논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