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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사람 우륵에 대한 <삼국사기> 기록들을 먼저 살펴볼게요.
1) 삼국사기 권제 4 신라본기(三國史記 卷第四 新羅本紀)
진흥왕(眞興王) 12년 3월(十二年春三月)
우륵에게 음악을 연주하게 하다 (551년 3월 미상 음력)
"3월에 왕이 순행(巡幸)을 하다가 낭성 (娘城)에 이르러서 우륵 (于勒)과 그의 제자 이문 (尼文)이
음악을 잘한다는 것을 듣고 [그들을] 특별히 불렀다.
왕이 하림궁(河臨宮)에 머무르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는데,
두 사람이 각각 새로운 노래를 지어 연주하였다.
이보다 앞서 가야국 (加耶國)의 가실왕 (嘉悉王)이 12줄 현금(弦琴)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12달의 음률을 본뜬 것이다. 이에 우륵에게 명하여 곡을 만들게 하였는데,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우륵은] 악기를 가지고 우리에게 귀의하였다.
그 악기의 이름은 가야금(加耶琴)이다."
우리의 전통악기인 가야금(加耶琴)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든 12줄의 현악기인데요.
현악기는 국가명 + 고대 현악기인 고를 붙여
거문(고구려) + 고(현악기)
가야(가야국) + 고(현악기) 로 불리게 됩니다.
신라고기에 전하는 우륵은 가야국의 사람이었으며
신라로 귀화하여 국원 (國原)에서 제자를 양성한 악사인거죠.
2) 삼국사기 권제4 신라본기(三國史記 卷第四 新羅本紀)
진흥왕(眞興王) 13년(十三年)
우륵에게 음악을 배우도록 하다 (552년 미상 음력)
"13년에 왕이 계고 (階古)·법지 (法知)·만덕 (萬德) 세 명에게 명하여 우륵 (于勒)에게 음악을 배우도록 하였다.
우륵은 그들의 재능을 헤아려서 계고에게는 가야금(加耶琴)을 가르쳤고, 법지에게는 노래를 가르쳤으며,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다. 학업이 끝나자 왕이 그들에게 연주하게 하고,
말하기를 “예전에 낭성 (娘城)에서 들었던 음과 다름이 없다.”라 하고 상을 후하게 주었다."
우륵은 학생들 개개인의 소질을 파악하여 계고에게는 가야금을,
법지에게는 노래를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치게 되네요.
이러한 기록을 통해 우륵은
우수한 교육자이며, 12곡을 작곡한 작곡가이며, 연주 춤 노래가 되는 예능인임을 알 수 있는거죠.
이번에는 삼국사기 본기가 아닌 잡지에 실린 기록입니다.
3)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음악(三國史記 卷第三十二 雜志 第一 樂)
우륵이 지은 12곡
"우륵 (于勒)이 지은 12곡은 1은 하가라도(下加羅都), 2는 상가라도(上加羅都),
3은 보기(寶伎), 4는 달이(達已), 5는 사물(思勿), 6은 물혜(勿慧),
7은 하기물(下奇物), 8은 사자기(師子伎), 9는 거열(居烈), 10은 사팔혜(沙八兮),
11은 이사(爾赦), 12는 상기물(上奇物) 을 말한다."
우륵이 지은 12곡은 지역명으로서
오늘날 지역명이 들어간 <진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처럼
민속악일 가능성이 크죠.
우륵은 평생동안 185곡을 만들었다 하네요.
4)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음악(三國史記 卷第三十二 雜志 第一 樂)
신라고기에서 이르는 우륵의 신라 귀화
"후에 우륵 (于勒)이 그 나라가 어지러워져
악기를 가지고 신라 진흥왕 (眞興王)에게 귀부하였다.
왕이 받아들여서 국원 (國原)에 편안히 두었다."
신라에는 음성서라는 국가음악기관을 두었는데,
음성서의 경․ 대사․ 사라는 관직은
신라의 골품사회에서 6두품~ 4두품 사이에 속한
귀족출신의 사람들이 차지할 수 있었다고 해요.
따라서 음성서 관리들의 사회적 지위는
일반 백성보다 높았으며, 우륵도 높은 지위였음을 알 수 있죠.
그리하여 우륵 역시 지난 시간의 왕산악처럼 귀족신분이고,
연주자이며, 작곡가이고, 교육자였음을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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