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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3대 악성인 고구려의 왕산악,
가야의 우륵, 조선의 박연(1378-1458)에 대해 들어보셨죠?
첫번째로 왕산악에 대해 살펴볼까합니다.
거문고(玄琴)의 제작.
신라고기(新羅古記)에서 이르기를 처음에 진 (晉)나라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高句麗)에 보냈는데,
고구려 사람들이 비록 그것이 악기(樂器)임은 알지만 그 성음(聲音)과 연주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국인(國人) 중에 능히 그 음(音)을 알고 연주하는 자를 구하여 후한 상을 준다 하였다.
이때 둘째 재상(第二相)인 왕산악 (王山岳)이 그 본 모습을 보존하면서
그 법식과 제도를 약간 고쳐 바꾸어 이를 만들고 겸하여 1백여 곡을 지어 이를 연주하였다.
이때에 검은 학(玄鶴)이 와서 춤을 추니 마침내 현학금(玄鶴琴)이라 이름하고
그 후로는 다만 거문고(玄琴)이라 불렀다라고 한다.
<삼국사기 악지> 에 보이는 왕산악에 대한 기록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조금 난해한가요?
일단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자면, 왕산악은 고구려의 제2상에 해당하는 높은 관료이며,
중국의 진시대(서진265∼316, 동진316~419)에 생존한 인물로서
현악기에 탁월한 연주자이고 작곡가이며, 악기 개량자이네요.
앞줄부터 다시 살펴본다면,
진나라사람이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소리를 내야하는 지 전혀 몰랐다는 거죠.
오늘날에는 매스컴이나 SNS가 발달되어 외국에서 공연하거나 사건사고들까지 실시간 검색이 가능한데,
그 당시에는 국내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론, 주변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알 수 없었죠.
낯선 악기이기에 선뜻 연주하는 사람이 없자
연주자에게는 후한 상을 준다는 공고문을 내게 됩니다.
그러자 오늘날 국무총리와 같은 신분의 왕산악이
악기의 본모습은 그대로 둔 채 부분적으로 약간 개량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개량된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100여곡의 작곡을 했고,
그 곡들을 거문고로 연주하니 검은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겁니다.
일단 한자를 보면,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게 한 악기로서 검을 현(玄), 학학(鶴), 거문고 금(琴)인 현학금으로 부르다
이후 가운데 글자인 학자를 빼고 현금으로 부르죠.
한글 명칭은
국가명인 고구려 혹은 검다는 의미의 거믄과 고대 현악기를 의미하는 고를 합쳐
거믄고로 불렀고 현재는 거문고로 부르게 된거죠.
칠현금과 거문고의 모양과 연주방법이 유사할까요?
칠현금의 특징은 줄을 받치는 안족이나 괘가 없죠.
연주자세는 커다란 받침대 위에 올려놓거나 바닥에 놓고 앞으로 약간 숙여 연주하죠.
이번에는 우리나라 악서인 [악학궤범]에 보이는 금의 구조입니다.
이번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거문고 연주모습과 현행 거문고 악기의 모습입니다.
거문고와 칠현금의 차이점 보이시나요?
첫째, 거문고는 6줄에 16괘 / 칠현금은 7줄에 13개의 휘( 괘나 안족이 없음)
둘째, 거문고는 무릎에 비스듬히 기대어 오른손의 술대로 현을 쳐서 연주 /
칠현금은 탁자 위나 바닥에 놓고 손으로 연주, 술대 없슴
왕산악과 거문고에 대해 정리하자면,
1) 거문고의 제작연대가 불분명하다.
2) 우리민족의 고유한 고정괘가 왕산악(265~420)에 의해 제도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왕산악은 칠현금과 유사한 현악기를 다룰 줄 아는 전문음악인이었다.
4) 주체적이며 창의적으로 개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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