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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신라(676~935)의 성립
1) 통일신라의 멸망 원인
(1) 전기 : 무열왕 ~ 혜공왕
(2) 후기 : 선덕왕 ~ 경순왕
(3) 전기: 전제왕권 ↔ 후기 : 귀족대란
(4) 혜공왕 시해, 선덕왕 즉위, 후기 시작
(5) 후기 150여년 간 귀족들의 권력투쟁
(6) 중앙세력 약화, 지방세력들의 득세
(7) 지방세력 득세 → 지방호족으로 발전
(8) 농민반란
(9) 견훤, 궁예의 후백제와 후고구려 건국, 후삼국 시대
(10) 후백제 멸망 이후 경순왕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
(11) 통일신라 멸망
2) 통일신라의 골품제도
골품제도란 법흥왕 이후 성립되어 신분이동이 가능하고, 신라 사회 전체를 규제함
2. 향악기와 가무
1) 향악기의 수용과 발전
(1) 삼국을 통일(660년 백제멸망, 667년 고구려정벌)
(2) 삼죽: 만파식적설화(무열왕권의 정당성과 신성성 강조)및 관악기의 출현은
고구려와 백제 음악문화의 수용 - 다른 나라에서 유래된 향악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음악으로 발전
(3) 거문고의 전승: 옥보고(신라골품사회에서 평민으로선 가장 높은 층의 귀족)
- 속명득 - 귀금선생 - 청장과 안장 -극상과 극종
(4) 기악곡(옥보고) - 음성서(9c초) - 성악반주곡(9c중)
(5) 고고학자료: 감은사(682) 청동제 사리기의 요고와 횡적(고구려 음악 수용),
상원사(725)범종의 공후와 생(백제음악 수용), 봉암사(904)지증대사 적조신탑의 생과 횡적
2) 향토색이 짙은 여러 지방의 민속음악을 귀족사회의 음악으로 발전
(1) 신라가무는 춤 · 노래· 기악을 포함한 종합예술로서 음성서에서 관장
(2) 삼현의 악조
▶ 가야고의 185곡: 하림조와 눈녹조
▶거문고의 187곡: 평조와 우조
▶ 향비파의 212곡: 궁조 ·칠현조 ·봉황조
(3) 삼죽의 악조- 평조, 황종조, 이아조, 월조, 반섭조, 출조, 준조 등 7악조
▶ 대금 324곡, 중금 245곡, 소금 298곡
▶ 삼현이 노래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었음에 비해 삼죽은 춤의 반주음악으로 쓰였으며,
기악독주악곡 포함 가능성
3) 당악의 등장
(1) 봉황조, 칠현조, 황종조, 반섭조, 월조 등의 악조
(2) 음성서 중심 - 향악과 비교해서 무시 못할 만큼 성장
(3) 박판, 대고, 당비파, 피리, 박
3. 악조변천
1) 『삼국사기』악지에 보이는 13종류의 악조명
거문고에 평조와 우조, 가야금에 하림조와 눈죽조, 비파에 궁조, 칠현조, 봉황조,
삼죽에는 평조, 황종조, 이아조, 월조, 반섭조, 출조, 준조. 이 중 평조는
거문고와 삼죽에 공통으로 나타나고, 나머지 조는 각 악기별로 다름
① 송방송, “향악 하림조의 음악사학적 고찰” 『한국음악사연구』(경산:영남대출판부,1980) 381-416쪽
② 신대철,“우리음악의 흐름(열하나)” 『얼과문화』1998.10월호(우리문화연구원) 2-5쪽
① 에서는 하림조가 후에 향악의 대표적인 악조로서 조명과 선법명의 총칭이며,
淸姑先宮인 sol선법(혹은 do선법)과 淸太簇宮인 la(re)선법의 악조명으로 해석
② 에서는 하림조가 악학궤범의 청풍체와 같은 음조직이라면, 오늘날 평조와 흡사하였을 것이며,
13조 중 몇몇 조명은 당악식의 조명만 차용했을 뿐 음조직은 향악의 체계로 된 조라는 견해를 보임.
2) 『악학궤범』: 아악은 12율을 중심음으로 궁조, 상조, 각조, 치조, 우조의 60조 이론이 있고,
속악(향악)에는 중심음을 나타내는 7조와 낙시조와 우조, 평조와 계면조,하림조와 최자조
그리고 탁목조 등이 있다. 중국 5조 중의 치조가 속칭 평조이고, 중국 5조 중의 우조가 속칭 계면조이다
4. 향악잡영오수(최치원)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1
금환(金丸, 7개의 공을 양손으로 던지고 받는 공놀이),
월전(月顚, 술잔을 다투며 노래하는 우전지방의 놀이, 재담),
대면(大面, 탈춤),
속독(束毒, 가면무),
산예 (䝜猊, 서역지방의 사자놀이)
▶ ‘향악’이란 명칭은 중국음악을 지칭하는 당악의 대칭으로 당악 전래 이전에 들어 온
서역음악까지를 향악이라 부른 듯 함.
금환
몸을 돌리고 팔 휘두르며 금환을 가지고 노니,
달이 구르고 별이 흐르는 듯 눈에 가득 신기롭다.
좋은 동료 있다 한들 이보다 더 좋으리,
넓은 세상 태평한 줄 이제사 알겠구나
金丸 廻身掉臂弄金丸 月轉星浮滿眼着 縱有宜僚那勝此 定知鯨海息波瀾
월전
높은 어깨 움츠린 목에 머리털 일어선 모양, 팔 걷은 여러 선비들
술잔 들고 서로 싸우네. 노랫소리 듣고서 사람들 모두 웃는데,
밤에 휘날리는 깃발 새벽을 재촉하누나
대면
황금빛 얼굴 그 사람이 구슬채찍 들고 귀신 부르네.
빠른 걸음 조용한 모습으로 운치있게 춤추니,
붉은 봉새가 요 시대 봄철에 춤추는 것 같구나
속독
엉킨 머리, 남색 얼굴 사람과는 다르네.
떼지어 뜰 앞에 와서 난새 춤을 배우네.
북치는 소리 둥둥 울리고 겨울바람 쓸쓸하게 부는데,
남쪽 북쪽으로 달리고 뛰어 한정이 없구나
산예
1만 리 머나먼 길 서방 사막 지나오느라 털옷은 다 해어지고 티끌만 뒤집어썼네.
머리와 꼬리를 흔드는 모습, 인덕이 배어 있도다. 영특한 그 기개 온갖 짐승 재주에 비할소냐?
▶ 현재 사자춤이 연행되는 곳은 봉산탈춤·통영오광대·수영야류·하회별신굿탈놀이 등
당악의 전래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문헌 기록은 없으나, 문무왕 4년(664년)에
당시 공주지방에 주둔하고 있던 당나라 군대에 사람을 보내어
당악을 배우게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악의 전래는 악기나 악조명의 수용을 통하여 짐작
5. 당악의 등장과 당악기의 출현
1) 당악과 당악조의 등장
(1) 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 “664년(문무왕4) 성천과 구일 등 28명을 부성에 보내 당악을 배우게 했다”
(2) 당악의 최초기록, 당악은 고취일 뿐 아니라 당의 속악일 가능성, 삼죽에 사용된 황종조·반섭조·평조
(3) 향악과 비교해서 무시못할 만큼 성장, 7세기 후반부터 뿌리내리기 시작
2) 당악기의 출현: 삼국사기엔 박판, 대고,
고고학자료에는 당비파, 피리, 박
6. 범패(梵唄)
1) 절에서 재(제사)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 범음, 성명(聲明), 어산이라고도 함
2) 일정한 장단이 없는 단성선율이며, 의식음악이란 점에서 서양의 그레고리안성가와 유사
3) 노랫말을 길게 늘여 부르기 때문에 가사를 알아듣기 힘듦
4) 불교수용: 고구려372, 백제384, 신라535년
5) 산보범음집이나 삼국유사에 의해 진감선사(774-850)때나 그 이전에 범패가 들어온 것으로 추정
6) 대공탑비문: 진감선사 혜소가 31세(804)때 당나라에서 범패를 배우고 귀국하여
옥천사(현 하동 쌍계사)에서 수많은 제자에게 범패를 전수했다는 기록
7) 범패의 노래형태: 신라풍(고풍), 당풍(신풍), 일본풍,
일본원인의『입당구법순례행기』에 기록(128쪽 인용문참고)
(1) 신라풍: 830년 진감선사의 귀국 이전부터 신라에 존재, <칭탄불명>-설교의식에서 나오는 찬불게로 추정
(2) 당풍: 진감선사에 의해 전래, <운하어차경>-열반경에서 유래된 개경게에 해당
(3) 일본풍: <계음정향해탈향>-대중들이 합창으로 부른기록, 화엄경에서 유래된 것으로 일본에 원형이 보존
8) 원효대사는 민중들에게 포교하기 쉬운 화청, 회심곡을 만듦
9) 고려의 대각국사(문종의 아들)의천에 의해 창종된 천태종에서 대규모 의식인
영산재(법화경을 듣기 위해 운집한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는 예식) 실시
10) 재의 종류
(1) 상주권공재(49재, 소상, 대상)
(2) 시왕각배재(재수를 위해 드리는 의식, 10대왕)
(3) 생전예수재(극락왕생 기원)
(4) 수륙재(수중고혼을 위한 재)
(5) 영산재(국가, 군인, 단체, 3일)
11) 조선시대 유교 예절의 강화로 인해 독자적인 예절을 발달시키지 못하지만
민중 속에 침투하여 도교의 주술적인 요소·무속의 점복·치병·의례 등을 수용하여
현재까지도 활발한 종교로 군림
12) 영산재(49재)는 중요무형문화재 50호로 지정
13) 범패의 종류:
(1) 안채비소리(법주에 의해 낭송되는 소리)
(2) 겉채비소리(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스님의 소리/ 홑소리, 짓소리),
▶ 겉채비소리 중 홑소리: 7언4구나 5언4구의 한문으로 된 산문,
범어로 된 진언을 독창으로 부름, 음역은 중간음역에서 5~8도 이내로 된 비교적 간단한 노래
▶ 짓소리: 한문이나 범어로 된 짧은 가사를 합창으로 부름,
독창으로 부르는 전주나 간주에 해당하는 허덜품이 있음.
한 곡의 연주시간은 30~40분 이상, 72가지 중 13가지만 남음.
(3) 화청 : 불교포교를 위해 대중음악에 한글사설을 얹어 부르는 노래
7. 무애(無寐)와 거사(居士)소리
1) 민간 포교를 위한 불교음악
2)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는 자신을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칭하며
불가의 말에 우리말이 섞인 노래를 지어 포교를 위하여 촌락을 돌아다니며 부름
3) 그가 손에 호리병을 들고 춤을 추었는데 이러한 원효의 춤을‘무애’라고 함
4) 무애무는 뒤에 고려왕조의 궁중정재로 채택되어 노래와 관현반주를 곁들인 2인무로 다듬어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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